앨범에서 우연히 꺼내든 미취학 아동 시절의 사진 한장 속에서 나의 자장가 역할을 해 주었던 전래동화 전집을 발견했다.
웅진에서 펴낸 이 전래동화 전집은 테이프와 세트여서 자기 전 엄마가 매일 틀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잠들기 힘들 때 읽을 목적 없는 책 한권을 머리맡에 두곤 하는데 꽤 효과적인 걸 보니 어려서부터의 습관이 아닐까 싶다.
나 뿐만 아니라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전래동화 전집, 이솝우화 전집 또는 백과사전 전집을 책장에 꼭 구비해 두었던 것 같다.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은 시절, 많은 아동용 교구 또는 교재들이 방문 판매를 통해 "전집" 단위로 유통되면서 육아를 담당하던 주부들 사이에 알음알음 유행을 타게 된 것이다.
물론 우리집에도 전래동화 전집과 한국대백과사전전집이 있었고 나는 수년 동안 도서 구입비가 아깝지 않을 만큼 닳고 닳도록 책을 읽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인 특유의 유교 사상이 주입되었고 꽤 많은 교양 상식들을 그 나이대 아이들보다 빨리 배우게 되었다.
내가 가장 빠져들었던 이야기는 "혹부리 영감"이었는데, 어느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와 거래하여 혹을 뗀 것을 보고 주인공 혹부리 영감도 도깨비와 만나 똑같이 거래하려다 되려 혹을 하나 더 붙이는 수난을 겪은 내용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혹부리 영감 - 나무위키 (namu.wiki) 를 참조하시라. 건전한 욕심이 아니라 분수에 맞지 않는 부당한 욕심을 내면 화를 입는다는 도덕적 교훈도 꽤나 흥미로웠지만, 도깨비가 등장할 때마다 테이프에서 들려오는 우중충한 효과음이 무섭고 스산한 느낌을 자아낸 덕분에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듯 매료되곤 했다.
전래동화 전집에는 그 외에도 단군 이야기, 부여, 고구려, 신라, 가야의 건국 신화, 견우와 직녀, 바리공주, 효녀 심청, 홍길동과 같은 유명한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웬만한 서양 동화보다 흥미롭고 드라마틱해서 매일매일 읽고 듣다보니 이야기를 줄줄 외울 정도가 되었다. 정말 재밌어서 오죽하면 지금 중고 서점에서 전집을 사서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다.
그렇게 내가 접한 옛 이야기들은 아직까지도 TV, 유튜브와 같은 영상매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아이들에게 말그대로 "전래"되고 있다. 전래동화를 읽는 것은 고도로 문명화되고 서구화된 사회 속에서 "한국인"으로서의 뿌리와 정체성을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호민 작가가 그리고 쓴 "신과함께"에서도 전래동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인물과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고 알고 있다.
아니 무엇보다, 너무 재밌고 기상천외하기 때문에 혹시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 읽을 것을 추천하고 싶다.